>제 목| 부활의 영성을 회복하자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점보는 일’이 유행이라고 한다. 대통령 선거, 지방단체장 선거 등 선거철이 되거나, 불안한 일이 있을때 소위 인기있는 점쟁이들을 면담하려면 줄을 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젊은이들은 삼삼오오 점보는 집을 찾아다니고, 그들의 앞날을 컴퓨터에 의존하여 여러 형태의 점을 본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점보는 일'이 신들림을 받은 무속인들 에게만 주어진 특권(?)으로 생각하였으나, 요즘은 명문 대학을 졸업한 남녀 점쟁이들이 무지기 수이고 그 일을 배워서 직업으로 나서려는 사람들도 즐비하다는 것이다. 왜 이러한 기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여러 각도에서 그 원인들을 분석할 수 있으나, 대체적으로 IMF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한 사람들, 각종 질병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영적으로 메말라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붕괴로 불확실한 미래를 사는 사람들의 막연한 기대와 바램 때문일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사회의 혼란, 사회 지도자들의 부정, 강도, 탈취, 사기, 폭력 사건 등의 삶의 부정적 요소들이 불안으로 이어지고, 일종의 극복 방법으로 영적인 신비, 기적, 예언, 기복 등의 현실적 삶의 도피를 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 안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한 발짝 물러 서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의 잘못된 가르침은 교인들로 하여금 상업주의와 물질주의로 빠지게 한다. 병 고치고, 예언하고, 뒤로 넘어트리는 일(?)이 신비의 능력을 보여주는 영성으로 이해하는 경향도 있다. 기적에 초점을 맞추어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데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기복주의 신앙에 빠지게 만든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영성을 뒤로한 채,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하나의 신비적 영성으로 이해하며, 그들의 현실적인 삶과는 별개로,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영성이 우리들의 현재적 삶과 괴리되어 도피적 혹은 부정적 모습이 될 때, 그러한 영성은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다. 참다운 기독교 영성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요 성령 안에서 사는 훈련이며 공동체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는 삶이다.
이 세 가지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영성은 피안적 혹은 저세상적 이야기가 되고 만다. 그러기에 올바른 영성의 이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고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하나의 지속적인 삶의 과정속에서 찾아져야 한다.
이 과정 속에서 삶의 변화가 일어날 때, 우리는 그것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성"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을 나의 구체적인 현재의 삶과 연결시키지 못하면, 다시 말해서, 그것을 나의 믿음의 확신과 고백으로 응답하지 못하면, 우리의 영적 현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 없는 기복적 생활로써 ‘점보는 일’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현재적 삶에 대한 승리의 표징이다.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성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현재적 삶 속에서 과거의 절망으로가 아닌 미래의 희망으로 나아가는 참된 생명력을 간직하는 것이다.
비록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현실들이 암담하고 짜증나고 비전이 없는 절망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할 지라도, 그러기에 또한 이 땅을 떠나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자.
‘지금 여기’라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잃어버렸던 부활의 영성을 회복하자!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던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들처럼(누가 24장 참고), 우리는 새로운 삶의 희망과 승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눈이 밝아지고 마음이 뜨거워지니.... 주께서 과연 살아나셨다”하고 기쁨의 찬가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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