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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강론)1:1~9 하나님을 버린 인생
음두진 2018-11-27 추천 0 댓글 0 조회 830
[성경본문] 이사야1:1-9 개역개정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 일 시/ 이사야 1:1~9
* 제 목/ 하나님을 버린 인생

 
본문 살피기와 묵상


1.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한 시대는 언제입니까?
* 웃시야부터 히스기야 시대(B. C. 790-686).
* 이사야는 웃시야 죽을 때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기에 약 60년간 장기 사역한 예언자임.

 

2. 유다와 이스라엘의 범죄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한 배은망덕.
* 하나님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함
* 여호와를 버리고 만홀히 여겨서 멀리 떠남.

 

3. 유다와 이스라엘의 범죄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 매를 맞고, 머리는 병들고 마음은 피곤함.
* 온 몸이 상처투성이나 치료할 방도가 없음
* 땅과 성읍도 황폐케 됨.

 

4.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받으면서도 우리가 배반하는 이유를 조용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말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는 자식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셨어요?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사1:1).

 

이사야는 웃시야 왕,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의 치하에서 약 60여 년간 예언자로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여기의 "이상"이란 말은 "본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영안이 열려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본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때로는 선견자로 불린 때가 있었습니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그 시대는 국제적으로 혼란한 시대였습니다. 웃시야와 바벨론 그리고 애굽 등이 서로 힘을 겨루면서 무력적인 확장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다는 전능자이시며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또 국가 간의 동맹을 통해서 자신들의 안전을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하나님을 떠난 배은망덕한 행위라고 엄히 책망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떠난 자식은 그 삶이 아무리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풍요하다고 하여도 그의 생각과 마음은 공허할 수밖에 없고 또 의지할 것이 없는 삶입니다. 이런 자의 삶은 마침내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삶의 시련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또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이때에 인간적인 꾀와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배은망덕한 행위이며 우리의 정신과 삶을 공허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인간적인 방법을 모색한 유다는 그때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유다는 영원히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에서 패한 나라의 비참함을 베트남의 보트피플 등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떠난 자에게 언젠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습니다. 이 심판은 사람의 의지와 고집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한 멸망과 후회만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이러한 사실을 항상 배우면서도 삶을 새롭게 하지 못하는 자신을 반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망하기 전에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또 믿음으로 사는 지혜를 가집시다.

본문 2절을 보면, 너무나 억울하고 답답하여 땅을 치며 슬퍼하는 사람처럼, 이사야도 하늘과 땅을 향해 유다 민족의 배은망덕한 처사를 지탄했습니다. 유다 민족의 죄과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높은 하늘에 까지도 그 소식이 갈 듯한 마음으로 그들의 죄악을 고발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그들을 자식처럼 길렀습니다.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민족을 키우신 것이 마치 부모가 자식을 키우듯이 사랑으로써 그들을 양성하였다는 뜻입니다. 양육이란 말의 원뜻에는 ‘키웠고 높였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입히고, 먹이고, 건강을 돌봐야 하고, 생각하는 것이나 공부하는 것이나 전부 관심을 갖고 돌봐야 합니다. 자식은 낳기보다는 키우는데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을 키운다는 것이나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것, 즉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것이 인재를 키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예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고, 마치 자식을 양육하듯이 그들을 기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온갖 물질적인 축복과 신령한 축복을 쏟아 주셨습니다. 심지어는 무수한 기적까지 행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노예 백성을 제사장 나라로까지 높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오히려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마치 자식이 자기를 양육한 부모를 몰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도 괘씸한 일이지만, 사랑하는 자녀들이 소나 나귀만도 못할 만큼 전락해버린 사실에 더 마음 아파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향하여, 그 무정한 피조물올 향하여 들으라고 하소연 하십니다. 얼마나 그 죄악이 심한지 하늘까지 들릴 것 같고 둔감한 땅까지 느낄 정도였습니다.

 

둘째로, 배은망덕한 택한 백성입니다.

 

그럼 왜 인생이 이토록 배은망덕하게 되었을까요?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안다고 했습니다. 사실 소는 공짜로 밥 먹지 않습니다. 열심히 밭갈고, 달구지를 끌고, 방아를 찧고, 맛있는 고기를 봉사하고, 가죽까지 인간들의 갖가지 장식품에 봉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임자를 안다고 했습니다. 나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의 "구유"란 주인이 먹여 살리는 손길을 말합니다. 먹을 것을 담는 그릇을 말합니다. 그런데 내 백성은 "자기를 양육한 하나님"을 거역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은망덕의 큰 죄입니다. 즉 악으로 선을 갚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13절에, "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알려고 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오직 세상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하나님과는 무감각해
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난다면 신나고 자유롭고 행복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죄의 고통과 그로 말미암은 심판 속에서 탄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품속에서 사는 그 자체만으로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나는 지금 하나님과 어느 정도 가까이 있는가’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은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 6:3)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이 죄를 회개치 아니함으로 화인 맞은 것 같아서 너무나 무감각함으로 죄책감에 둔하여진 까닭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죄에 대한 감각이 있음으로 회개케 되며, 죄를 회개하게 될 때 영감이 있어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경험과 성경말씀에 순종함으로 얻어지는 기쁨의 체험과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경험을 이사야가 책망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을 깨닫는 지혜가 결핍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깨달음이 없으면 마음에 양심의 고동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하늘에 무수한 별들과 내 마음 속의 양심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깨닫게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의 깨달음(사색)과 외적 세계의 관찰로 하여금 하나님을 깨달을 것입니다.

 

둘째는 받은 축복과 특권을 교만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지 않고 자신이 잘나서 획득한 것으로 착각하고 스스로 속인 것입니다.
셋째는 계속되는 죄악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고 죄에 대한 감각이 둔해져서 죄악된 생활이 체질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범죄한 나라입니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어진 백성"이란 말은 이들의 죄악이 거족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의 죄의 짐이 무겁다는 뜻입니다. "행악의 종자"란 말은 그 죄악이 뿌리깊이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죄가 구조적이고 조직적이라는 말씀입니다.
5-6절을 보면,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온 머리는 병들었다”는 말은 부패했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머리에 병이 들면 제일 무섭습니다. 수술 중에도 뇌수술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피곤하였다."는 뜻은 심장이 병들었다는 말입니다. 심장이 피곤하면 쉬게 될 것이며, 쉬게 된다는 말은 육신의 종말을 말합니다. 당시의 사람들의 마음 상태가 심각하다는 말입니다. "발바닥"까지 성한 곳이 없으니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고위층 중심부가 병들었으니 말단 관리나 서민에 이르기까지도, "위에서 해 먹으니 나도 해 먹자."하는 식으로 만신창이가 됐다는 말씀입니다. 나라의 형편이 그쯤 되었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용서함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너희의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이 뜻은 이방인에게서 처참하게 파괴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방인 외국 군대가 잔인하게 행동할 것을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소금의 맛을 잃으면 "사람들이 버리고, 밟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며칠 전 정부 관료급 인사가 기독교 지도자의 여러가지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우리의 불쌍한 모습을 보여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9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조금 남겨 두신다’고 하셨습니다. 자연계를 주관하시고 이 세상을 임의로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회개하고자 행실을 고치는 자에게 용서함을 베푸실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특별한 민족입니다. 그들은 타락한 온 인류에게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전할 사명이 있는 민족입니다. 하나님은 이 목적을 위하여 많은 민족 가운데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영광이요,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척하였지만 그들은 이제 하나님이 귀찮아졌습니다. 마음이 멀어지니 형식만 남게 되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멀리하면 더 편안하고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피곤하기만 했습니다.
사회는 대형 사고와 무정함으로 가득찼습니다. 머리는 건전하고 올바른 생각 대신 쾌락과 한탕주의로  병들었습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과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려고 특별히 선택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버리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가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어떠한 노력을 하여도 결코 행복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며 회개하는 자에게는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하시며 다시금 의의 성읍과 신실한 고을로 회복하여 주시지만, 거절하여 배반하는 자들에게는 원수에게 보수하시며 철저하게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게 심판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교회의 문제점은 형식주의적이고 사회적인 책임을 소홀히 하고 있는 점입니다. 많은 예배와 화려한 예배의식에 치우쳐 있지 않은지, 선행과 공의를 얼마나 행하고 있는지, 돌아볼 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고쳐야 할 형식적인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깨끗하게 해야 할 죄 목록을 적어봅시다.
당신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임에도 주일날 아침에 교회 마당만 밟는 신자는 아닙니까?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는 형식적인 신자는 아닙니까? 빨리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정말 마음으로 그 분을 사랑하고 경외합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낳고 키우신 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 마음을 정하는 그 순간, 피곤하고 지친 삶은 사라지고 영광과 생명으로 충만한 삶이 다시 펼쳐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무리 큰 지를 지었더라도 회개하면 용서하신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용서를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회개하면 사죄함을 받습니다. 이것을 이사야는 "주홍 같은 죄를 눈과 같이 씻어주신다."고 외쳤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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