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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강론) 4:1-6 시온에 남은자의 복
음두진 2019-02-24 추천 0 댓글 0 조회 922

시온에 남은 자의 복/ 이사야 4:1-6

 

여러분 ! 본문(3)에 보면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시온과 예루살렘은 동일한 장소로서, 시온이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신령적 장소를 말하는 것이며 예루살렘이란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지역적 장소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은 단순한 지역적 장소의 의미만을 가지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이란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시는 거룩한 땅(Holly Land)라는 시온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땅이라는 절대적 소유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예루살렘은주후 70년에 로마군에게 함락되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을 빼앗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마사다라는 요새에서 4년 동안을 저항하며 싸우다가 끝내는 항복하지 않고 집단적으로 자살하였습니다. 이 역사적 현장이 지금도 관광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후 예루살렘은 역사적으로 주후 688년에 이슬람교도들에게 점령을 당하였고 이슬람교도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다는 장소에서 마호멧이 흰 말을 타고 승천했다는 전설을 믿어 그 자리에오말이라는 사원을 지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사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중세 교회사를 보면 주후 1099-1291년까지 무려 8차례나 이 성지인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십자군 전쟁이 있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으며 예루살렘은 계속해서 지금까지 이슬람교도들에게 점령되어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 발포어 선언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이 발포어 선언은 1918년경 중동을 지역을 주관하던 영국이 내린 중요한 선언입니다. 즉 발포어 선언이란 나라를 빼앗기고 25백 년 동안 세계에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팔레스타인에 돌아와 살수 있다고 선포한 선언입니다.

그 후 이스라엘은 1948년에 독립을 하여 주권을 회복했으나 잃어버린 영토를 모두 회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1967년에는 소위 6일 전쟁이라는 전쟁을 통해 요르단으로부터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예루살렘 안에 있는 오말 사원은 아직도 이슬람교도들이 차지하고 있으므로 영적 예루살렘은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루살렘을 중요하게 여기고 생명을 걸고 지키려는 것은 단순한 영토 문제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이요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시며 함께하시는 거룩한 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준 땅 가나안을 떠나지 말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가나안의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던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의 후예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430년 동안 애급에서 종살이를 하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도 가나안에 흉년을 피하기 위하여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기는 부끄러운 일이 있었습니다(12).

 

그러면 오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1)에 보면 <그 날에>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그 날이란? 하나님을 시온을 떠난 유다백성들이 맞게 되는 부끄러운 날을 의미합니다. 그날에는 어떠한 일들이 있겠다고 했습니까? 유다의 남자들이 모두 전쟁에 나가 죽어서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들고 애원을 하는데 내 것으로 먹고 내 것으로 입을 것이니 자기를 아내로 삼아 남편 없는 여자라는 수치를 면케 해 달라는 애원인 것입니다(1).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삶이 일시적으로 쾌락이요 향락일지는 몰라도 반드시 부끄러운 날, 애통하는 날이 임하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또 <그 날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 날회복의 날이요 영광의 날이며 새로운 싹이 돋는 날입니다. 이 시작하고 마지막을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시작하신 구원 운동을 비유하는 것이며, 운동의 직선상에서 처음과 나중이 되시그리스도라 수 있습니다(Leupold). 와의 싹과 소산은 비교할 데가 없을 정도로 영광스럽고 아름답습니다(2). 여호와의 싹과 땅의 소산으로 비유된 지극한 아름다움은 1차적으로예루살렘이 멸망해도 살아남은 자 중에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자들을 말하며, 2차적으로는 시대에 믿음을 순결하게 지키는 우리말합니다. 세상과 구별되게 사는 저들은 모두 룩한 사람들입니다(3).

날에는 여호와의 싹이 이름답고 영화로울 것입니다. 그날에는 믿음을 지키고 남아 있는 자 모두에게 거룩하다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칭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 날에는 삶을 지치게 하는 더위와 고난의 비바람이 하나님이 치신 천막에 가려서 전혀 우리를 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남은 자의 인생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안전하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

아무리 절망적인 가운데도 희망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나라가 남은 자를 통하여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메시지만이 선포될 수밖에 없는 절망적 현실, 그러나 남은 자인 당신인하여 세상은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하여 드시 그의 나라를 이루실 것입니다. 지금의 고난을 참고 견딥시다. 시온에 남아 있는 자가 영원한 영광을 얻는 예수의 나라를 바라봅시다.

 

시온을 떠난 유다 백성들은 그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만, 아주 소수의 복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 입니까 ? 오늘 본문이 소개하는 복 있는 사람은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시온을 떠나지 아니하고 <시온에 남아 있는 자> 혹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 이들은 온 유다 백성들이 타락해서 동방의 풍습을 따르며 그들과 함께 우상을 섬길 때에도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시온에 남아서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첫째로 소산을 아름답게 하신다.

본문(2)에 보면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에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에 피난한 자란 시온을 떠나지 아니한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땅에 소산을 아름답게 하신다>는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조금 쉽게 말하면 그가 가진 땅을, 그가 가진 사업을,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하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시온을 떠나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소유한 것들을 축복해서 아름답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느 해 농부가 벼를 심었습니다. 농사가 잘되어 금년에는 풍년이 들었다고 좋아할 때였습니다. 그때 농부는 농사 잘된 것이 너무 너무 보기가 좋아서 식사만 끝나면 논둑에 서서 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가을장마 비가 와서 고개를 숙인 벼들이 모두 쓰러지고 장마 비에 논밭이 다 떠내려가는 큰 수재를 당했습니다. 그때 농부는 병이 나서 누워있으면서 밖으로 방에만 있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그렇게 누워만 있지 말고 나가서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워야지요.”라고 말하니까 남편이 하는 말이그 쓰러지고 떠내려간 논밭이 보기가 싫어서 나가기가 싫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본문에서 그 소산을 아름답게 하신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은 그의 땅을, 그의 사업을, 그의 가정을, 아름답게 해주시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보기에는 일시적으로 좋아도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하시지 않으면 보기도 싫어진다는 것입니다.

127<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누구의 소산을 아름답게 하십니까? 아무리 어려워도 시온을 떠나지 아니하는 사람, 아무리 힘들어도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사람 의 소산을 아름답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누리던 향락은 역사적으로 잠깐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은 25백년이나 길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을 택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일시적 향락을 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25백년의 고난의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오늘도 겪고 있는 고통과 고난은 우연한 고난이나 고통이 아닙니다. 그들의 선택이 잘못되므로 그 고통은 오늘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켜야 할 시온과 예루살렘은 무엇일까요? 교회요, 사명이요, 직분이요, 가정이요, 예수믿는 사람으로서의 자존심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아무리 떠나고 싶어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시온과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선택인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소산을 아름답게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낮과 밤을 지켜 주신다.

본문(5-6)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과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게를 두시며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을 때 아브라함의 잘못된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가나안에 머물러 있으면 굶어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였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갔던 야곱의 식구들도 가나안에 머물러 있으면 굶어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애급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다 백성들에게도 잘못된 생각이 있었습니다. 무슨 생각입니까? ‘하나님만 섬기다가는 굶어 죽겠으니 하나님을 버리고 저 은금 보화가 많은 동방 사람들을 따라서 살자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 우리들의 마음 속에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믿음대로 살면, 성경대로 살면, 목사가 하라는 대로 다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것 같다는 마음의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유혹 할 때가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시온을 떠나지 아니하고 남아 있는 자를 우리 하나님께서 밤과 낮으로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두 번째 나오는 본문의 내용은 출1321절에 나오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이야기를 인용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길을 갈 때 그들이 모세를 따라가다가는 모두 광야에서 낮에는 태양으로 죽고 밤에는 사막의 추위에 죽을 줄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늘이 되어 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을 만들어 그들을 추위에서 지켜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보면 떠나라고 하신 때가 있었고 떠나지 말라고 하신 때가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셨고, 소돔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반대로 성경에 보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고, 가나안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살펴보면 죄에서는 떠나라고 하셨고 말씀에서는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겼던 자들은 모두 큰 고난을 당했습니다. 롯의 사위들은 소돔 성을 떠나라고 할 때에 떠나지 않다가 유황불에 따 죽었고, 떠나지 말라던 가나안을 떠났던 이스라엘 민족은 430년 동안 애급에 종살이를 했으며 아브라함도 부끄러운 일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서는 떠나야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한 발자국도 떠나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변의 어떤 마을을 방문했는데 어떤 할머니는 90이나 되셨습니다. “이 집에서 얼마나 사셨냐고 물으니까 그 할아버지가 대답하시기를 저는 이집에서 태어났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집이 예루살렘도 아닌데 정말 떠날 줄을 모르는 분이시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 한 교회 오래 다닌 어느 장로님이 길에서 잘 아는 사람은 오랜 만에 만났는데 그분이 묻기를 지금은 어느 교회를 나가시느냐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곡반석교회 나간다고 하니까 아니 아직도 그 교회를 다니시냐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아마 아직도 유다 백성과 같이 무엇을 떠나야하고 무엇을 떠나지 말아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내용이 무엇입니까? 3장의 유다 지도자들과 타락한 여인들에 대한 심판을 예고 한 후 구원의 아름다운 때를 말씀해주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긍휼하심이 교차하여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메시아의 때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어떠합니까?

 

여호와의 싹을 통해서 시온의 더러움을 청결하게 하십니다.

심판과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우리의 반응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며 무섭습니다. 1절은 타락한 예루살렘 여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비참한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메시아의 때에 이름답고 영화롭게 회복될 시온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날에는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며, 남아 있는 자는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더러움과 죄악을 씻고 정결케 되어서 거룩하다 칭함을 받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싹은 여호와께서 풍부한 활력과 싱싱한 생명력으로 구원의 크신 일의 움직임을 묘사한 것입니다. 즉 메시아를 통한 놀라운 구원 역사, 새생명의 운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남아 있는 자가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이요 주께서 친히 우리를 추악한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함입니다. 우리는 남은 자로서 하나님의 긍휼을 받았음으로 그 긍휼하심을 드러내며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싹을 통한 새 생명의 역사가 자신에게 역사하고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역사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임재와 보호하심이 분명히 드러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끝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통해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 주실 뿐 아니리 영광가운데 임재하시며 보호의 손길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시내산에서 보였던 영광보다 훨씬 능가하는 영광을 구석구석에 찬란하게 비추시며 광야에서 불과 구름으로 임재하여 함께 하여 주신 것처럼(13:21, 22) 보호하시며 인도해 주실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적대적인 세력들을 막아주시며 피할 피난처도 마련해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은 남아 있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을 경험하려면 시온에,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남아 있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업은 사람이며, 죄악이 범람한 가운데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킨 자입니다. 그리고 남는 자는 혈통적으로 유대인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천하 만민 중에 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므로(5:8), 메시아를 믿는 우리는 이 시대의 남은 자입니다. 이제 남은 자로서 영광스러운 메시아 왕국을 보며 그 영광을 만방에 선포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시온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삽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시온을 지키므로 1) 소산이 아름다워지는 축복 2) 밤과 낮으로 주의 보호를 받으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질문-당신은 이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시온에 남아있는 자입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로서 어떤 은혜를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까?

적용 - 남은 자로 살자. 하나님의 임재가운데서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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