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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강론) 3:13-26 심판하시려고 일어서신 하나님
음두진 2019-02-24 추천 0 댓글 0 조회 841
(6)심판하시려고 일어서신 하나님/ 이사야 3:13-26

 

 

1.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에게 100만 달러를 준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나는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직장, 가족, 형편에 정말 만족한다고 했습니다.

주최한 사람은 "여러분의 말은 다 들어보았는데 한 사람도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주질 못했습니다"

그의 질문은 "정말 만족하다면 무엇때문에 여기에 왔습니까"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풍부에 처하든지 비천에 처하는지 진정 자족하는 삶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2. 늘 일에 쫓기는 욕심 많은 농부가 있었습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적었습니다. 그래서 불평과 불만만 가지고 살다가 어느 날 묘안을 생각하여 냈습니다. 그 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오늘 밤 자고 일어나면 내게 3개의 손이 더 달려서 모두 5개의 손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손 두개로는 도저히 내게 주어진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며칠 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그렇게 진정으로 원한다면 세 개의 손을 더 줄 수가 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겠느냐?. 잘 생각하여 결정하여라.>

욕심 많은 농부가 대답하였습니다. <절대로 후회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농부에게 모두 5개의 손을 주셨습니다. 일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소득도 많았습니다.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구경 오는 것이었습니다. 신기하였기 때문입니다. 돈은 벌었지만 온 나라의 사람들의 구경하려고 마을로 몰려왔습니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내가 지나친 욕심을 부렸구나. 하나님이 주신 대로 만족하며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다.>

본문 묵상

본문 13절에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셨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려 재판정에 들어오시는 장면입니다. 지금 읽은 말씀은 각 계층에 대한 판결의 내용입니다. 판결의 내용이 무섭습니다. 이러한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모든 일에 자족하는 것입니다. 자족이란 말을 우리말 사전에서 찾아보면 "스스로 넉넉함을 느낌"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좀 더 풀이하면, 탐심이나 욕심, 과욕을 버리고 자기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넉넉하다고 생각하며 만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족하는 생활'이란 탐심이나 욕심을 부리지 않고 넉넉하게 풍요롭게 느끼고 만족하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원어 사전에서 자족은 만족과 같은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족이란 "외부적인 조건이나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초연하게 참으로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족하는 생활'이란 것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소유나 조건에 좌우되지 않고,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족하게 생각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참으로 자족하는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그는 외부의 조건이나 환경에 좌우됨 없이 자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았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사람으로서, 모든 것에 초연하게 자유로운 사람이었으며, 자족하며 언제나 감사하며 기뻐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삶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삶일까요?

 

남에게 베풀어 주며 사는 것입니다.

 

자족'이란 말은 '넉넉함'이라고 했습니다. '넉넉하게 느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넉넉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느낀다면, 결코 남에게 베풀어 줄 수는 없습니다. 대개의 경우,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면, 더 많은 것을, 더 좋은 것을, 더 값비싼 것을 가지려고 욕심을 부립니다. 그리하여 무서운 탐욕과 탐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탐욕이란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욕을 가진 사람은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 중에 "사치와 겉치레의 사회풍조"가 지금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위기에 직면했다고 합니다. 수출산업, 설비투자 침체현상, 금리문제, 노사분규, 분배불균형의 갈등 심화, 여기에 따르는 '과소비 현상', 수입증가 특히 외국산을 선호하고, 값비싼 것, 호화스러운 것을 선호하는 우리들의 심리현상이 한국경제의 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슬기롭게 극복하지 낳으면, 파멸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돕고 협력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치와 겉치레'를 금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가 휘청거려 파산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위기현실에 직면해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귀담아 들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사야는 그 당시 사회의 사치와 겉치레 현상을 보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했습니다.

한 사회의 도덕지수(MQ)는 성(SEX)의 건강도와 비례합니다. 노아시대의 홍수심판의 원인 역시 성적 타락에 의한 죄악의 가득함에서 비롯되었음을 성경은 증언합니다(6:1-7).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죄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주목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아름다움인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경고는 부유한 여인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인들의 부요는 남편들의 교만 즉, 권력과 물질에 대한 탐욕에서(1:23)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경고는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13-15), 그리고 시온의 딸들(16)을 향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손에 있는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주목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말씀을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유대가 멸망할 즈음에 여인들마저도 교만하여 타락했습니다. 남자들의 교만이 주로 권력과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나타났다면, 여자들의 교만은 주로 허영과 음란으로 나타났습니다. 정을 통할 남정네들을 찾아 다녔고(16), "시온의 딸들은 잘난 체 목을 빼고 추파를 던지며 돌아다니고 발목으로 잘랑잘랑 소리나 내며 이리저리 꼬리치고 돌아다닌다

화려한 장식품들을 이용하여 남자들의 시선을 끌고자 했습니다(18~23). 하나님은 저들의 아름다움을 썩은 냄새가 진동하게 하여 수치스러움으로 바꿀 것이며(24) 여인들의 과소비와 사치현상을 지적하는데, 장식한 발목 고리, 머리망사, 반달장식, 귀걸이, 팔목 고리, 면사포, 화관, 발목사슬, 허리띠, 부적, 반지, 코 고리, 예복, 겉옷, 목도리, 손주머니, 손거울, 세마포 옷, 머리 수건, 너울 등 이 같은 것을 장식하는 여인들의 머리에 버짐이 나게 하고, 그들의 머리털을 밀어 버리겠다. 온갖 패물과 아름다운 옷을 벗겨버려 하체를 드러나게 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겠다. 향냄새는 썩는 냄새로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화려한 옷을 베옷으로 대신하고 아름다운 얼굴은 수치의 낙인으로 찍어버리고, 오매불망하던 장정들은 전쟁 중에 다 사라지고 슬픈 곡소리가 가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5~26).

 

이렇게 가정을 파괴시키는 원인인 사치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입니까? 탐심 즉 채워도 한이 없는 탐욕 때문입니다. 이 탐욕은 경쟁심을 유발합니다.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 값비싼 것을 경쟁하며 욕심 부리며 가지려고 합니다. 사치와 겉치레는 자기 과시욕 때문입니다.

사치와 겉치레는 왜 하게 되는 것입니까? 필요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많은 것, 좋은 것, 값비싼 것, 신분과 지체를 과시하고 인정받으려고 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떻게 하든지 많은 것을, 더 좋은 것을 값이 비싼 것을 소유하려고 다투고 욕심을 부립니다. 그러므로 이같은 경쟁적 과시욕이 과소비를 부채질 한 것입니다. 값 비싼 옷, 고급승용차, 값비싼 저택 등은 바로 자기 신분을 과시하는 것들입니다.

이토록 끝이 없는 탐욕과 소유욕에 사로잡힌 사람, 어떻게 하든지 많은 것을, 값비싼 것을 소유해서 자기 신분을 과시하려고 경쟁하는 경쟁적 과시욕에 사로잡힌 자는 결코 자기가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어 주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가져도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줄 것이 없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거지들이기 때문입니다. 비참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비록 가진 것이 부족하다고 해도, 보잘것없다고 하더라도, 그 가진 바를 남에게 베풀어 주며 살 수 있습니다. 자족하는 사람은 남에게 베풀어 주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족하는 생활을 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가진 것은 보잘 것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바를 넉넉함으로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며 사는 생활을 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바를 족한 줄 알고 넉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평하거나, 불안하지 않고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늘 부족을 느끼고 불평하며 불만스러워하는 사람은 가진 것을 보지 않고 늘 없는 것을 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늘 감사하며 만족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늘 있는 것을 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이 물을 보고 말하기를 물이 반잔밖에 없네, 또 한 사람은 아직도 물이 반이나 남아 있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없다, 있다의 차이, 보는 시각의 차이입니다. 처음 사람은 없는 것을 본 사람이고, 그 다음 사람은 있는 것을 본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참으로 우리가 많은 것,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 없는 것만 생각하면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늘 불만이고 불평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가진 것이 없더라도, 비록 보잘것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있는 것을 생각하고 만족한다면 늘 넉넉하게 풍요롭게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넉넉한 생활은 물질 관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인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특히 부부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남편에 대하여 왜 불만스럽습니까? 남편이 가지고 있는 부분을 보지 않고, 없는 부분, 부족한 부분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왜 아내에 대하여 불만스럽게 생각합니까? 아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보지 않고, 늘 단점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남과 비교해서 부족하고 단점을 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아내와 비교해서 좋은 점, 훌륭한 점을 비교하지 않고, 나쁜 점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부부생활을 위한 부부십계명 중에 "비교하지 말라"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남편을 다른 남편과, 아내를 다른 아내와 비교하지 말되, 특히 외모, 학력, 성격, 경제력, 습관 등을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비교하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부족한 점을 보기 때문에 상대를 미워하게 되고, 시기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남과 비교해서 단점을 이야기 한다고 해도 결코 상대를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합니다.

부부 십계명 중에 다른 계명 하나는 "자주 칭찬을 하고, 격려하라"고 했습니다. 칭찬 받기를 누구나 좋아하지만, 남편의 칭찬과 격려는 아내의 정신건강과 모든 생활에 자신감과 안정감, 기쁨을 줍니다. 외모의 장점, 옷맵시, 음식솜씨, 좋은 마음씨, 좋은 습관 등을 칭찬해주는 일은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아내가 남편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은 남편으로 하여금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게 합니다. 가정에서 아내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남편은 결코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남편의 좋은 점을 항상 찾아내어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은 남편으로 하여금 창의력과 용기를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게 합니다. 이것은 부부관계 뿐만 아니라, 자식과의 관계도 그렇고, 직장생활에서 동료와 상사와의 사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일에 감사하고 삽시다. 지난 주일에 우리교회는 맥추감사절을 지켰습니다. 지난 반년을 지나오면서 슬펐던 일, 기뻤던 일,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지내왔습니다. 지난 세월을 살아오면서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것을 생각하면서, 없는 부분 부족했던 부분을 생각하며 불평하지 말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이토록 우리가 자족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만 이웃에게 베풀어 주며 넉넉함으로 살고, 늘 기쁨으로 살아갈텐데,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자족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까요? 그것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를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어려운 형편, 불만스러운 형편에서 자족할 수 있었고,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었던 그 근원은 "능력주시는 자"로 인하여 가능했습니다.

4:13절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족과 기쁨을 물질의 소유에 두고 있습니다. 사람은, 물질로 인하여 소유로 인하여 채워지지 않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물질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가져도, 사람들이 아무리 허영에 들떠 허세를 부리고 대단한 것을 가진다 해도, 남이 갖지 못하는 귀금속을 가진다 해도, 고급 승용차를 탄다고 해서, 고급 저택에 산다고 해도 그것으로 만족하거나, 기쁨을 가지도록 되어 있지 않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채워지지 않으면 안되는 공허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공허는 하나님만으로 채워질 수 있는 구멍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리석게 이 공허가 채워지지 않는 것을 세상의 것으로, 보이는 것으로, 물질적인 것으로, 잠정적인 것으로, 상대적인 것으로, 일시적인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마무리

어떤 소년이 학교에 지각을 했습니다. 평소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않던 학생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소년에게 지각 사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소년은 학교에 오는 도중 어떤 아저씨가 동전을 떨어뜨려서 그걸 같이 찾느라고 늦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물론 동전을 같이 찾아드리는 일도 좋지만, 학교에 오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미안하다고 말하고 지각하지 않게 와야 한다고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선생님은 또다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자기가 그 동전을 밟고 서 있었기 때문에 올 수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소년은 동전을 떨어뜨린 아저씨가 찾기를 포기하고 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그래서 지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 소년처럼 무언가를 밟은 채 한쪽 발로만 움직이면서 언제까지나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사치, 겉치레, 허영심이라는 동전을 밟고 서서 언제까지나 꼼짝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동전을 밟고 서있는지 자신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잘못된 생각으로 동전을 밟고 있다면, 용기를 내어 그 발을 번쩍 들고 우리가 가야 할 곳을 향해 힘껏 내딛어야 할 것입니다.

 

여성들은 사회도덕의 마지막 보루요 가정을 지키는 최후의 방패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성들에게는 사회 활동을 는 남성들과 달리 가정을 보살피는 특권과 의무를 주셨습니다.(3:16~19). 그러므로 여성들이 타락할 때 그 사회도 붕괴됩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젊은 여성들을 볼 때 우리 사회의 앞날은 어둡습니. 문란한 이성교제와 희박한 정조관념, 찰나적인 쾌락의 추구, 사치스럽고 노출이 심한 옷들, 가정을 이루는 것에 대한 경외심의 상-아무런 거리낌 없이 커피숍에서 담배를 피우는 예쁜 여대생을 보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여성의 참된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스물한 가지나 장신구를 착용한 여자들이 늘인 , 정을 통하는 올 눈으로 아기죽거리며 다닌 이스라엘이 어떻게 멸망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

이 민족이 살기 위해서는 이 나라의 여성들이 복음을 사랑하고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며 기도하는 여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수도 한복판의 다리가 무너지는 붕괴 일보 직전의 위기에 직면해 있습.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 이제 근검과 절약, 사랑과 경건의 모습으로 돌아가 우리가 사회를 살립시다. 하나님의 말씀과 원리에 따라서 가정이 세워지고 지켜질 때 이 사회는 소망이 있습니다. 말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을 세우는 일이야말로 가장 급한 일이요, 또한 지혜입니다.

 

기도/ 심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힘쓸 뿐만 아니라 또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확신으로 제가 방종하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과 의를 추구함으로 제 인생이 말세의 세상에서하나님의 상을 받는 복된 인생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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