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믿지 아니하면/ 사 7장 1절~9절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자 한 농촌교회에서 기도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 모여 산으로 올라가서 엘리야처럼 닫힌 하늘을 열어달라고 기도회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모두가 성경찬송을 들고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교회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여든 사람들 중에는 주일학교 어린이도 있었는데, 한 어린이는 성경찬송은 들지 않았지만 손에 우산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이 어린이에게 물었습니다. "우산을 무엇 하려 들고 가느냐?"
어린아이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회를 하고나면 비가 올 것이 아니냐? 그래서 우산을 들고 왔다" 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크게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왜냐면 목사님은 비가 오기를 기도했지만, 실제로 이 소녀의 믿음처럼 비가 올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사6:1)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웃시야가 죽은 다음 그의 아들 요담은 16년 동안 통치를 잘 하였습니다. 왕이 통치를 잘 할 때에는 선지자의 활동이 약하였습니다. 요담이라는 선한 왕의 시대에도 이사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예언하였지만, 이사야서에는 요담 당시의 예언 활동에 대하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사야서에 제일 처음에 나오는 예언은 요담의 아들인 아하스 때에 한 것이었다.
유대나라의 가장 전성기를 이루었던 웃시야라는 왕은 52년 간 나라를 통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라는 왕은 16년간 왕위에 올라 통치하였습니다. 요담은 산당제사를 허용하였지만, 그래도 선한 왕이었습니다.
요담이 죽은 후 아하스라는 왕이 통치하였는데, 아하스라는 사람은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북쪽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처럼 이방 사람의 풍속을 받아들였다"고 했습니다. 왕이 앞장서서 우상을 멸하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수립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유다 왕 아하스는 이방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으며,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왕국 이스라엘은 언제나 남왕국 유다를 삼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인접한 나라 중에 북쪽으로 아람(시리아)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아람은 철천지원수 같이 지내는 나라였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는 어느 때에도 끊어지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문제가 국경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가 유다 나라를 치는데는 어쩌면 한 마음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동쪽에 있는 앗수루 제국이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으니 두려움을 느껴서 두 나라가 먼저 동맹을 맺고, 남왕국 유다도 끌어들이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친 앗수루 정책을 쓰면서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앗수루를 치기 전에 유다를 쳐야한다는 생각하였습니다. 당시 남왕국의 왕은 아하스였고, 북왕국은 베가, 아람의 왕은 르신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베가와 아람 왕 르신이 동맹을 맺고 남왕국 유다를 치려고 수도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유다는 아람과 이스라엘의 연합군에 의해서 포위당했습니다. 국가는 위기에 빠졌고 백성들은 심각한 동요에 빠졌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상황은 우리에게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악의 세력은 주의 백성들을 대적하여 동맹을 맺었습니다.(1-2)
1-2절.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들은 악한 세력들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적의 연합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분명합니다. 유일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에 따라서 살고자하는 예루살렘과 유다를 없애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신에 하나님을 거부하고 세상의 권력에 순응하는 허수아비 왕을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오늘 날도 우리 성도들을 공격합니다. 사단의 공격은 오늘의 세속적인 분위기 속에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물질의 어려움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반대로 물질의 풍족함으로 나타 날 수도 있습니다. 삶의 어려움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반대로 풍요로움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의 목표는 우리로 하여금 괴로움이나 세상의 쾌락과 재미에 빠져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부담스럽게 느끼고 떠나게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우리를 형식적인 성도로 만들어서 진실한 신앙을 없애고자하는 것입니다. 그저 주일에 교회에 다닌 것으로 만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의 생명을 위협하려는 사단의 음모인줄알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적극 싸워야하는 것입니다
2. 주의 백성들은 악의 세력을 대항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3-4)
3-4절.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왕의 마음이 흔들렸고, 백성의 마음도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릴 때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서 격려하시고 있습니다. 아하스의 마음과 그 백성들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두려워 한 것은 죄책감 때문이며 믿음이 약한 탓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적으로 삼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친구가 될 수 있는지를 몰랐습니다. 아하스가 왕위에 오른 날부터 온갖 우상 숭배에 정신이 없었으니, 이런 전쟁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전에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어 범죄한 아하스를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선지자는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나가서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아들 스알야숩이라는 이름의 뜻은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알야숩이라는 뜻 하나만 가지고도 그 뜻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지켜주시고 돌아오게 하시고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4절 하반절에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악한 왕에게 책망하고 심판을 경고하여야 하는데, 그래도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격려의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지면 세상의 어떠한 도전에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삼가고, 조용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에 맡기고 세상에 보이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삼가라"는 말은 "주의하라"는 말인데, 영적으로 각성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정치의 움직임에 민감하고, 연맹군에 주의하고 신경을 쓰고 있었지만 이젠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고 듣는 것을 주의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고 듣는 감각은 죄와 허영 그리고 지혜와 교훈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처한 우리의 삶을 점검하고 세상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지는 않은지 주의하여야 합니다.
"조용하라"는 말은 떠들썩하게 우왕좌왕하지 말고, 안정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염려를 다 하나님에게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내가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지, 사람을 보고 상대적인 열세로 위축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진정으로 두려워할 분은 영과 육을 함께 지옥 불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시고, 싫어버리지 않으시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편이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여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한 편이 되어 나를 대적하여도 하나님 한 분만 나의 편이 되어주시면 승리는 맡아놓은 것입니다. 세상에 힘이 되지 않는 수많은 것을 붙들어야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셔서 담대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아람의 르신과 이스라엘의 베가는 갑절의 힘을 가진 군주가 아니라, 그들은 타다 남아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였습니다. 부지깽이에 불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니요, 타다 남아 연기 나는 정도인데, 왜 두려워할 것입니까? 그들의 수고는 아무 것도 아니요, 이번 전쟁으로 그들은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두 연맹군의 군주들은 유다 나라에 다부엘의 아들을 어용 왕으로 세우고 자기들이 마음대로 통치하고 착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타다 남아 연기나 피우고 있는 부지깽이에 불과하였습니다.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사람은 낙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 낙심하면 낙심이란 전염성이 강해서 왕이 낙심하면 온 백성들이 낙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습니다.
악한 세력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하나님께 대적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대적하는 세력은 자기 분수를 모르는 그 교만으로 인해서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람왕 르신은 후에 앗수르와 전쟁 때에 죽임을 당했고, 이스라엘은 얼마가지 않아서 망하고 말았습니다(9). 우리의 삶의 형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낙심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보호자이신 하나님 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려운 형편과 함께 하시며,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당할 때에 피할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자주 말하는 “형통”이라는 말은 모든 일이 저절로 잘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피할 길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을 눈동자처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려운 때뿐 아니라 우리를 병들게 하는 풍요와 쾌락 앞에서도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순결한 신앙을 가져야하겠습니다. 이러한 신앙이 있을 때에 우리를 위협하는 악한 세력으로부터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3. 주의 백성들은 굳은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5-9)
7절에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악한 세력은 동맹을 맺기도 하고, 악한 꾀를 수립하기도 하고, 약한 나라를 쓰러뜨리고 우리가 마음대로 해보자고 하여도,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시면 소용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고 하시면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아람도 망하고 이스라엘도 서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가 힘을 합하여 유다를 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세우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9절 하반절에 "만일 너희가 굳게 서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위치에서 굳게 서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믿음을 굳게 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견고함도 없습니다. 믿음은 가장 좋은 근거와 진리를 발견한 것이요, 그 다음에는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그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살아 계시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으며,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만나주시고 상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열방을 의롭게 통치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말씀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굳게 세워주십니다. 우리나라를 축복해 주십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어떤 상식적인 수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생활입니다. 믿음은 큰 확신이요, 신뢰요, 우리의 생명을 맡기고 내어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대로 살겠다고 하는 결심에서 믿음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힘써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잘 믿고 거룩한 성경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 전체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 안에 살아가면 그 힘은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마무리
유다 왕 아하스와 그 백성들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에게 부딪힌 위기는 아주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침략의 위기보다 더 심각한 것은 백성들에게 힘을 주소 용기를 북돋우고 이끌어 가야 할 왕이 그 내면 가운데 믿음이 없고 하나님을 더나 불신에 빠져버린 사실입니다. 왕이 불신으로 인한 두려움에 빠지자 결국 국가는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입니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태도와 자세가 문제다’라는 말이 잇듯이 문제는 바로 내부에 있는 것입니다.
한 인간이나 가정, 그리고 국가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섭리하십니다. 우리가 이 분명한 진리를 믿지 못할 때 아하스 왕이나 백성들처럼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두려움 가운데서 사시나무 떨 듯 떨게 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람이나 사마리아가 아무리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했습니다. 곧 망해 없어질 나라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키시면 그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맹군이 무서워 떨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아하스 왕에게 친히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 하시며 징조를 약속하십니다. 메시야를 보내서 친히 백성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보호하고 다스리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확실한 안전보장입니까? 그래도 믿지 않는 아하스와 백성에게 남은 것은 심판뿐입니다· 힘든 때 일수록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인생을 사는 지혜입니다. 위기일수록 하나님을 믿는, 그래서 역경에 강한 참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주 하나님, 우리 인류에게 언제든지 풍부한 손으로 복을 주시고 우리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큰일을 이루셨으니 감사합니다. 가정을 더 화목하게 하며, 친구들을 더욱 존경하게 하옵소서. 슬픔마저 기쁨으로 바꾸시고, 고통을 영혼의 승리로 바꾸옵소서. 사망의 고통을 영혼의 승리로 바꾸시옵소서. 사망의 독침을 앗아가옵소서. 죄의 능력을 소멸하시고 역사를 새롭게 하옵소서. 평화를 더욱 평화스럽게 즐거움을 더욱 즐겁게, 믿음과 소망을 더욱 견고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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